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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로보암의 길 - 박상봉

플라시오 2015. 8. 7. 02:26

여로보암의 길 - 박상봉

 홈지기 | 2004·06·17 19:47 | HIT : 1,005
여로보암의 길

왕상 12:25-33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용어는 북이스라엘 열왕들의 기록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용어는 북 이스라엘의 신앙적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용어이다. 즉, 그들의 종교적 타락의 성격이 무엇이며, 그 타락이 가져다 주는 현실적 심판들이 무엇인가를 살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보암의 길을 단순히 불신앙의 문제로 취급하기 이전에,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 추구하는 종교성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북 이스라엘 왕들이 살았던 시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타락 이후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여로보암의 길은 우리가 실존하는 현실 속에서 늘 반복되는 문제이고, 우리의 신앙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문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살피고자 하는 북 이스라엘의 열왕들의 내용이 아니다. “여로보암의 길”이라는 수치스러운 용어를 만들어 낸 장본인인 여로보암을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여로보암의 길”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그에 대한 교훈을 생각해 볼 것이다. 

솔로몬 왕은 치세말년에 이방의 왕비들로 인하여 다른 우상 신들을 섬기므로 하나님 앞에 악을 했다(왕상 11:1-8). 성경은 이를 두고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고 기록하고 있다(왕상 11:8). 이 때문에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번이나 솔로몬 앞에 현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다. 이 일이 원인이 되어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내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니라(왕상 11:11)”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다윗으로 인하여 솔로몬 때에는 일어나지 않고 솔로몬의 아들 세대에 일어났다. 실제로, 하나님은 솔로몬의 범죄 이후 여로보암에게 한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를 줄 것이라고 약속하셨고(왕상 11:26-40), 솔로몬 사후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마음을 어리석게 하여서 이 일을 이루셨다(왕상 12:15). 결국,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가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에 넘어간 것이다(왕상 12:16-20).  

여로보암은 왕이 된 이후 에브라임 산지에 성들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거주했다(왕상 12:25). 
그러나 등극 초기의 여러 불안한 정세들이 안정되어가는 시기에 여로보암 왕에게는 하나의 큰 근심이 생겨났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여로보암을 향했을 때의 감정적이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자, 곧바로 백성들의 종교성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현실의 문제가 백성들 앞에 다가왔다. 이스라엘 민족은 르호보암의 왕이 싫어서 여로보암을 따르긴 했지만, 그로 인하여 자신들이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장소를 잃어버린 것이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르호보암을 따르는 유다 지파의 땅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즉, 국가 정세가 안정되어 가면서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실제적인 신앙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소위 하나님께 제사들 드리기 위해 예루사렘을 방문할 수 없는 현실에서 민족적인 동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그 마음에서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들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왕상 12:26,27).” 실제로, 이 문제는 종교성이 많이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하여 그냥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왕의 설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당연히, 여로보암 왕은 고심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세워야 했다. 

여로보암 왕은 고심 끝에 특단의 대책을 내 놓았다. 이미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전통적으로 신성한 땅으로 알려진 베델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 금송아지를 “너희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神)”이라 칭하면서 백성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선포한 것이다(왕상 12:28,29). 이어서, 왕은 여러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사람들로 제사장을 삼았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절기를 정하고 그 만든 송아지에게 분향하게 하였다(왕상 12:30-33). 백성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별다른 의심없이 벧엘과 단에 가서 그 금송아지를 분향했고, 더 이상 예루살렘을 기억하기 않게 되었다. 여로보암의 이러한 정책은 백성들의 동요를 막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정도로 큰 범죄였다(왕상 12:30). 

표면적으로 볼 때, 여러보암의 대안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안과 종교성을 채워주는데 성공했다. 종교적 타락을 논하기 전에 여로보암은 현실적으로 문제들에 접근한 것이다. 분명히, 여로보암이 그 당시 솔로몬 이후 이미 이방종교와 혼합된 종교적 타락을 경험한 상태에서 직시한 것은 율법이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이 거주하는 곳에 “자신들을 보호해 줄 섬길 신(神) 있는가?”에 대한 문제였다. 모세 율법에 명시된 바른 종교성과 상관없이 왕국이 분리된 이후 현실에 눈뜬 북 이스라엘 민족을 불안하게 한 것은 유대 족속이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섬기고 있고 이방민족들도 숭배하고 있는 신(神)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짐작해 하는 것은 여로보암 왕의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북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선지자들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를 책망하고 그 행위에 대한 심판을 알리기 위해 유다에서 한 선지자가 왔기 때문이다(왕상 13:1-10). 아무튼, 여로보암의 정책이 아무런 저항 없이 북 이스라엘에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은 왕의 말을 온전히 듣는 그들의 순수함 때문이 아니라, 참된 종교 지식의 무지 속에서 발생된 어리석음과 이미 변질되어버린 신앙의 현실을 교묘하게 이용한 결과였던 것이다. 실제로, 이 상황은 출 32:1-6에 나온 모세 당시 아론의 금송아지 사건과 비슷하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백성들은 그가 더디 옴으로 인하여 아론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해 만들라” 주문했고, 아론은 그 백성들을 위해 금송아지를 만들었다. 여호와의 대변인으로 인식된 모세가 그들 앞에서 오래 동안 보이지 않았을 때, 그 민족은 마음이 심히 불안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세가 없이도 스스로 섬길 수 있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여호와가 필요했고, 아론이 신의 형상을 만들었을 때는 당연히 기뻐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여로보암 역시도 예루살렘이 더 이상 필요가 없는 눈에 보이는 여호와라 칭하는 금송아지를 백성들에게 제시했고,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는 여호와를 믿는 참된 종교적 성격이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종교적 타락으로 혼란한 시기에 인간 본성에 가장 부합하는 종교적 성격을 찾아낸 것이다. 

상황적으로 생각할 때 북 이스라엘 민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관련하여 여러 문제들로 고민했을 것이다. 특별히, 이미 남 유다와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이후, 제사들 드리기 위해 남 유다에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여행해야 한다는 종교적 현실로 인한 부담감을 가졌을 것이고, 동시에 여로보암의 고민에서 기록된 것처럼 실제로 예루살렘으로 북 이스라엘의 모든 민족이 제사를 드리러 가야 한다고 전제할 때(왕상 12:27), 새롭게 세운 나라의 정체성이 의문시되고 결과적으로 분리 자체가 의미 없을 수 있다는 정치적인 부담감 역시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눈 앞에 있을 때, 여로보암의 정책은 북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대단히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내용이었다. 참된 종교적 내용과 상관없이 그들의 종교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새롭게 세운 나라를 지속할 수 있는 정치적인 기반을 보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이후 종교적 타락의 양상은 신앙적 내용을 판단하는 기준을 잃게 한 것이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바른 종교적 정의를 내려 줄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적 내용과 상관없이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었다. 참된 신앙적 내용을 가늠하기 전에, 그들은 자기네 땅에서 섬길 수 있는 종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 당시 그들에게 신앙적 내용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여로보암은 이러한 그들의 종교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직시했고,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의 대안은 정치적인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도구로 삼은 불신앙적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신앙적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솔로몬 왕이 버림을 받을 때, 선지자 아히야를 통하여 그 자신에게 약속하신 내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왕상 11:38),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온 백성들을 우상을 숭배하도록 조장한 것이다. 소위, 여로보암이 만들어낸 신은 본래 그들의 조상들이 섬기던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조작된 신이었다. 여로보암은 이러한 종교정책을 통해서 신앙 공동체로 특징을 가진 민족적 통일성을 파괴하면서, 북 이스라엘과 유다를 완전히 분리시켰다. 종교의 이질화를 통해서 민족적인 이질화의 결과를 이루어낸 것이다. 바른 종교와 상관없이 그의 정치적 야심을 이루기 위해 유사 종교를 만들었고, 백성들을 미혹시켰던 것이다.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은 사례 중의 대표적인 실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딤전 6:5). 

특별히, 여로보암의 이러한 변질된 신앙적 입장은 이후 북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에게서 자주 등장했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네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여…”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여로보암에게 내린 심판(왕상 14:6-16)과 동일한 내용을 그들에게 선언하셨다. 즉, 여로보암의 범죄는 다른 왕들의 심판의 기준이 되었고, 그 때문에 가장 수치스러운 내용으로 북 이스라엘이 사라지는 날까지 언급되었다. 

여로보암의 길을 통해서 지도자의 문제를 교훈으로 살필 수도 있겠으나, 좀더 우리게 가까운 문제로 여로보암 왕이 가진 종교적 입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더욱 실제적일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 살핀 여로보암의 종교적 내용을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질문에 대한 정의를 분명하게 내릴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앙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사실, 현실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여러 의미일 수 있다. 사실, 인간들은 종교를 통해서 많은 것을 하고자 한다. 인간의 본질과 관련해서는 인간이 가진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고, 시대성과 관련해서는 종교 자체를 일종의 힘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고, 거대한 힘을 가진 이익 집단으로 생각하여 어떤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여로보암의 신앙의 내용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종교를 그 자신의 야심을 이루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록을 통해서 여로보암의 행위가 범죄인 줄 알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 그러한 일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을 판단하기는 그리 쉽지 않을 수 있다. 신앙적 기준이 흐려진 시대를 산다고 할 때는 더더욱 힘들다. 현실 속에서 누구나 동의되는 내용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에 대한 참된 존중과 숙고가 없다면, 우리 역시도 여로보암과 다르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여로보암이 자원하는 누구든지 제사장을 삼아 종교지도자가 되게 한 것은 요즘 시대의 풍경과 비슷하지 않는가? 어느 누구나 자의적으로 종교를 해석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삶의 현실을 이루는 수단이 아니다. 삶의 목적이며, 의미이다. 하나님을 신앙하지 않는 인생이란, 그 자체로 허무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직 경외의 성격으로만 있다. 그분은 창조주요, 구원주이시며,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로보암의 길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으로 앞서 말한 자문을 하며 늘 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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